[책마을] 고대나 지금이나 여전한 '재난 희생양 찾기'

입력 2022-03-03 17:45   수정 2022-03-04 00:55


1755년 11월 1일 오전 9시40분, 포르투갈 리스본. 가톨릭 축일인 만성절을 맞아 성당에 모인 사람들은 지축이 흔들리는 듯한 충격을 느꼈다. 이내 벽과 지붕이 무너져 내리고 스테인드글라스 유리창이 산산조각 나면서 신자들 머리 위로 떨어졌다. 성당 앞 대로가 갈라지고 인근 건물들이 힘없이 쓰러져 내렸다. 이어 거대한 쓰나미가 아수라장으로 변한 시가지를 덮쳤다. 곳곳에서 발생한 불길은 거센 해풍을 타고 걷잡을 수 없이 번져나갔다.

대서양 해저에서 발생한 리히터 규모 9.0의 지진은 대항해 시대 이후 번영을 구가하던 항구도시를 무참히 파괴했다. 역사가들은 당시 리스본 인구의 절반가량인 최대 10만 명이 목숨을 잃었고, 건물 중 약 85%가 붕괴한 것으로 추정한다. 전례 없는 대재앙과 마주한 사람들은 이 사태를 어떻게 이해하고 대처했을까.

송병건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최근 펴낸 《재난 인류》에서 리스본 지진을 “자연 재난에 대한 인식 전환을 불러온 역사적 사건”으로 주목한다. 당시 대부분의 사람은 가톨릭교회의 가르침대로 자연 재난을 인간의 타락과 방종에 대해 신이 내린 형벌로 이해했다. 하지만 볼테르, 루소 등 계몽주의자들은 이런 전통적 해석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왜 세상에 재난이 발생하는지, 재난의 대상과 범위는 어떻게 결정되는지, 재난의 책임을 누구에게 물어야 하는지 등 실질적인 원인과 대책을 찾기 위해 논쟁을 벌였다. 칸트는 자연과학적 방법론을 통해 지진의 원인을 규명하려고 했다. 송 교수는 “지식 세계를 이끄는 사람들 사이에서 본격적으로 논쟁이 벌어졌다는 사실이 중요하다”며 “재난은 신이 내린 천형이라는 종교적 설명은 더 이상 자동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 책은 재난을 주제로 한 역사 교양서다. 폼페이를 멸망시킨 베수비오화산 폭발부터 코로나19 팬데믹까지 약 2000년간의 인류 역사에서 인간이 각종 재난을 어떻게 경험하고 이해하고 극복했는지 살펴본다. 저자는 시대별로 지배적인 재난의 유형을 구분한다. 공업화 이전까지는 지진, 홍수, 가뭄 등 자연적인 재난이 대부분이었고, 19~20세기에는 산업재해 같은 인공적인 재난이 대표적이었으며, 21세기에는 디지털 사고 등 시스템 재난이 특징적이라고 설명한다.

1845년부터 5년간 약 100만 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아일랜드 대기근 사태도 ‘인공재난’의 관점에서 바라본다. 가난한 아일랜드인의 주요 식량인 감자에 역병이 퍼져 흉작이 이어지고 기근으로 비화했을 때, 적절한 구호와 식량 공급 대책을 마련했다면 그만큼의 아사자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최첨단 기술과 통신을 바탕으로 한 디지털시스템은 재난을 통제하고 제어하는 데 큰 역할을 하지만 한 번의 사고가 대형 재난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2003년 8월 14일 미국 뉴욕의 한 에너지회사에서 컴퓨터 버그로 발생한 전력 조정 문제가 연결망을 타고 뉴욕시 전체의 정전 사태로 이어졌다. 통화 급증으로 통신망 장애가 발생했고, 수도 공급에 차질이 생겼다. 가전제품을 사용하지 못하고 지하철 등 교통수단이 멈추면서 사회적 혼란이 가중됐다. 저자는 “모든 것이 시스템화된 현대사회에선 일부에서 발생한 작은 문제가 엄청난 사회적 재난으로 커질 수 있다”며 “다양한 진화와 발전 과정을 거치며 재난에 대한 지식과 예방 및 대응 기술, 사회적 수습책을 갖춘 지금도 재난을 피하고 안전을 도모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고 말한다.

고대와 중세에 비일비재하던 희생양 찾기가 현대 사회에서 반복되는 세태도 지적한다. 코로나19 팬데믹 초기에 미국과 유럽 등에서 중국인 등 아시아인에 대한 신체 테러가 발생했고, 일본 등에서는 확진자와 그 가족이 사회로부터 암묵적인 배제를 당하는 고통을 호소했다. 저자는 “마치 15세기 소빙하기에 평균 기온이 1~2도 떨어졌다는 이유로 마녀재판을 하거나, 유대인의 재산을 빼앗고 추방했던 것처럼 잘못된 정보로 인한 새로운 희생양을 만들면 안 된다”며 “가짜 뉴스와 악의적인 뉴스를 걸러내고 편협한 생각을 전파하는 SNS 등과 같은 매체는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책은 파란만장한 재난의 세계사를 다양한 도판을 곁들여 이해하기 쉽게 펼쳐내 술술 읽힌다. 상식 수준에 머무는 내용과 다소 도식적인 전개가 아쉽지만, 온갖 재난 이슈에 대한 기본 소양을 갖추고 싶다면 읽어볼 만하다.

송태형 문화선임기자 toughlb@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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